길을 걷다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노오란 은행잎이 우수수..
ㅎㅎ 횡재한 기분이네요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예쁜 은행잎 하나 집어 들고
책갈피에 꽂아 넣지 못했네요
옛날 같으면 예쁜 은행잎 몇개 집어 들어
책갈피에 넣어 놓고 곱게 말려 들여다 보고
친구에게 선물하거나 편지에 동봉했을텐데..
그만큼 세월에 무디어진 마음이
안타깝기만 하군요
철없고 순수했던 아름다운 시절..
저 보다 한살 어린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전 여고를 졸업 하자마자 체신공무원이 되어
이리우체국 창구에서 우표를 담당하고 있었지요
70년대 초..
그때만 해도 우표수집이 붐을 일으켜 어른들은 물론
학생들도 취미로 우표를 많이 수집했습니다
기념우표가 나오는 날에는 우체국 문을 열기도 전에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사기도 했고
또 어떤 학생들은 학교를 지각하면서 까지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시트, 전지, 한국조폐공사가 써 있는 밭田자 모양,
두장, 낱장, 에러난 것, 등등 여러모양으로 수집했는데
아무튼 그때 우표수집이 인기가 있었습니다
우체국장님도 우표 수집가셨는데 저보고 좀
남겨 놓으라고 따로 부탁도 하고 그러셨으니까요
그때 키도 크고 아주 잘 생긴 남학생이 웃으며
누나 누나 하면서 부탁을 하곤 했습니다
남고 2학년 학생이었는데 수학여행을 갖다 왔다느니
서점에 갔었느니 하면서 공예품, 책 같은 것도 선물했습니다
그렇게 얼굴을 보다가 남학생이 졸업을 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대학에 떨어져 서울에서 재수를 하게 되었고
서로 편지를 주고 받게 되었습니다
남학생 집은 김제였는데 몇달에 한번 집에 내려올 때마다
찾아와 얼굴도 보고 데이트도 하곤 하였지요
데이트라고 해야 기껏 같이 길을 걷는 거였는데
주로 이리역에서 만나 배산을 갔습니다
이렇게 노오란 은행잎이 떨어지던 날 둘이 걸었고
눈 내리던 겨울날 둘이 걸었습니다
재수 끝에 외대 영어영문과에 합격했고
변함없이 편지는 계속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발간하는 학교신문도 일주일에 한번은
꼭 부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가고 난 후부터는 편지가
언제나 영문으로 써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영어를 모르는 저는 어찌나 부담이 되든지..
편지가 온 날은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영어사전하고 싸우는 날입니다
전 학교 다닐때 영어 성적이 제일 나빠서
항상 평균점수를 깎아먹고 그랬거든요
지금도 어찌된 일인지 영어 싫어합니다
잘 못합니다
문법도 몰라서 그냥 단어만 가지고 대충
두드려 맞추고 감으로 그냥 해석해서
답장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대학교에는 풋풋하고 어린 예쁜 여학생들이
많이 있었을텐데 왜 나에게 관심을 두었나
지금도 이상합니다
아마 풋사랑? 첫사랑? 그 비슷한 것?
어느날 그가 심각하게 말했습니다
저 대학교 졸업하고 군대 갔다 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전 아무말을 못했지요
속으로 가만히 계산해 보니까 그 때가 되면
제 나이가 30살이더군요 ^^;;
그리고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학벌도 없고 인물도 없고 여러모로 제가 부족해서요
그런데 저와 같은 직장에 3개월 다니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발령을 받아 서울로 올라간 친구가 청혼을 했습니다
그냥 친구였는데..
지금의 남편인데 인물도 없고 재산도 없고 그냥 그런데
마음 하나만은 태평양처럼 넓었습니다
막내라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고요
이 남자하고 결혼하면 마음고생은 하지 않겠구나 싶어
청혼을 받아 들이고 결혼을 하여 직장도 서울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 들은 소식인데 그 남학생의 편지가
계속 오다가 답장이 없으니까 직장으로 전화가 왔더랍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여 서울로 갔다고 했더니
절대 그런일은 없을거라며 혹시 동명이인 아니냐고 묻더래요
저는 죄인입니다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아름다운 이별을 하지 못한 정말 멍청한 죄인
이 아름다운 가을날..
젊고 순수했던 옛 시절에 있었던 추억 하나
가슴에서 꺼내 본다면 이 계절에 어울리지 않을까요?
오랜만에 제가 근무하던 이리우체국에 가 보았습니다
건물도, 마당의 소나무도 그대로인데..
그 옛날 그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네요
명칭도 익산중앙동우체국으로 바뀌고
창구도 전에는 넓었는데 축소가 되었구만요
다 리모델링하여 낯선곳으로 바뀌었습니다
하기사 이 이야그는 40년 된 옛날 옛날 이야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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